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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역경의 열매](2)궁핍한 시절을 이끈 어머니의 고봉밥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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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본사랑재단 작성일10-10-12 조회6,624회 댓글0건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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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국민일보 역경의 열매]최복이(2)
궁핍한 시절을 이끈 어머니의 고봉밥
 
나는 1965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났다. 우리 집은 최씨 집성촌의 종갓집으로 지주 집안이었다. 그런 종갓집 맏며느리였던 어머니는 동네에서 이름난 ‘왕손’이셨다.

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항상 떠오르는 게 있다. 고봉밥이다. 사람들은 우리 집에 와서 농사일을 하고 밥도 먹었다. 그럴 때면 어머니는 산봉우리처럼 밥을 푸셨다. 그것도 모자라 주걱에 물을 발라 두드리며 밥을 꾹꾹 눌러 주셨다. 초등학교5학년 때 나는 어머니가 무식하게 밥 푸는 모습을 탓한 적이 있다. 그때 어머니가 정색하며 하신 말씀은 아직까지도 기억난다.

“니가 호강에 초쳐서 남의 집 밥을 안 얻어 먹어봐서 그런 소리 하는 겨. 이 긴긴 해에 얻어먹는 밥은 먹어도 먹어도 허기지는 거여. 남의 집에서 밥 먹다 모자라도 더 달라고 못하는 것이고….”

우리는 13남매였다. 어머니가 7남매를 낳고 작은 어머니가 6남매를 낳았다. 아버지가 종갓집 귀한 외아들이다 보니 작은 부인을 하나 더 들여 자손을 많이 보려 한 것이다. 작은 어머니는 어머니보다 어린 나이에 키도 크고 인물도 좋았다. 그래서 아버지는 정치나 사업으로 객지로 다닐 때면 늘 작은 어머니를 데리고 다니셨다.

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었다. 많을 때는 예닐곱인 아이들이 동시에 학교에 갈 때도 있었다. 어머니는 엄한 시아버지모시랴, 많은 자식들 키우랴, 그 큰 종가 살림하랴 쉴 날이 없었다. 그렇다고 남편 사랑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. 아버지보다 두 살 많은 어머니는 평생 피해의식과 화병을 지니고 사셨다.

그런 어머니였지만 객지 나간 오빠들에게는 늘 미안해 하셨다. 지주 집안이라 해도 시골이기에 현금이 없고 자녀들이 많다 보니 돌아갈 혜택이 적었다. 개학이 되면 오빠들은 등록금과 쌀 두세 말을 등에 지고 타지로 떠났다. 청년이 쌀 몇 말로 6개월을 어찌 버틸까 하며 늘 마음 아파하셨던 어머니는 끼니 때마다 부뚜막에 고봉밥을 아들 몫으로 얹어놓고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곤 하셨다. 그렇게 하면 객지 나간 사람이 배를 안 곯는다는 할머니말씀이 있었다고 한다.

어머니의 고봉밥과 종갓집 종손 며느리 인심은 본죽을 움직이는 정신적힘이 되었다. 사실 본죽 1호점을 대학로에 열었을 때 흔들렸던 게 있다. 열 명이면 아홉 명이 죽의 양이 너무 많으니 양을 줄이고 값을 내리라는 것이었다. 장사가 잘된다면 누가 뭐래도 처음 그대로 밀고 나가겠지만 장사도 안 되는 마당에 그런 지적을 받으니 정말 그렇게 해 볼까 하는 충동이 있었다. 그때 내 맘을 다잡아준 것은 어머니의 고봉밥 정신, 종갓집 인심이었다. 본죽의 양이 다소 많은 것은 사실이다. 하지만 ‘남으면 싸주면 되지만 먹다가 모자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’ 생각하니 차라리 많은 편이 나았다. 더욱이 본죽은 주문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죽을 쒀 내는 맞춤 죽이다 보니 더 달라고 해도 줄 것이 없었다. 그래서 청년이 먹어도 충분한 한 끼 식사에 초점을 맞췄고 먹다가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양을 정했다.

만약 그때 양을 줄이고 가격까지 낮추었으면 어찌 되었을까 생각해 보면 아찔하기만 하다. 아마 지금처럼 한 끼 식사로 충분한 죽의 개념을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. 죽이란 건 원래 못 사는 사람이 먹는 것, 환자가 먹는 것이라는 고정관념도 절대 깨지 못했을 것이다.

아 참, 올해 86세이신 어머니는 지금 청양 오빠 집에 계신데 딸의 기도에 예수님도 영접하시고 화병도 주님이 치료해 주셔서 잘 지내신다.

정리=백상현 기자 100sh@kmib.co.kr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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